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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아시안게임] 뇌진탕 견딘 친구에 라스트 ‘골든댄스’ 맏형까지... 전웅태의 뒤의 ‘원팀 코리아’

2023-09-25 09:06:39.0

왼쪽부터 한국 근대5종 남자대표팀의 정진화, 이지훈, 전웅태가 시상식에서 기념촬영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잊을 수 없는 최고의 러닝메이트들이었다.
 
한국 근대5종 남자대표팀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근대5종 남자 개인·단체전 금메달을 휩쓸며 최고의 하루를 보냈다. 아시안게임 근대5종 역사상 첫 2연패를 달성한 전웅태(28·광주광역시청)를 앞세웠다. 그에 못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마땅한 주인공들이 더 있다. 두 대회 연속 은메달을 따낸 이지훈(28)과 노장 투혼을 불사른 정진화(34·이상 LH)다.
 
◆불의의 낙마… 뇌진탕 증세도 뚫어낸 불꽃 투혼
 
이지훈은 이번 대회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사실상 메달 향방이 정해진다는 펜싱 랭킹 라운드에서 264점으로 1위를 찍었다. 이후 승마도 300점을 챙기며 순항했다. 하지만 수영에서 2분4초44, 7위로 주춤했다. 결국 최종 레이저 런(사격+육상)에서 동료 전웅태에게 자리를 내줘 은메달에 머물렀다.
 
누구도 손가락질 할 수 없다. 그는 이날 승마 훈련 도중 낙마하는 사고를 당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한때 뇌진탕 증세까지 호소했다. 이어진 펜싱 보너스 라운드에서도 연신 머리 쪽을 매만져 트레이너가 상태를 연신 체크하기도 했다. 경기를 마치고 믹스트존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한 것도 상태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이지훈이 승마 종목 연습을 위해 말에 오르던 중 날뛰는 말에서 낙마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뜨겁고 습한 항저우의 날씨까지 겹쳤다. 그럼에도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을 요구하는 레이저 런을 치러냈다. 전웅태와 끝까지 맞서는 투지 넘치는 레이스까지 선보였다. 전웅태가 “(이)지훈이 몸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순위를 역전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고 솔직한 심경을 드러낼 정도였다.
 
이지훈은 의연했다. 전웅태는 “지훈이가 ‘네가 1등을 해서 고맙다’고 얘기해줬다. 팀원간 서로 의지되는 유대감이 있다. 기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슬프기도 하다”고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 박수를 받아 마땅한 이지훈의 투혼이었다.
 
◆모두의 롤모델, ‘진화형’의 라스트 댄스
 
지난 2020 도쿄 올림픽은 한국 근대5종 역사에 길이 남을 대회다. 전웅태가 동메달로 한국 최초, 아시아 2번째 메달리스트가 됐다. 그 뒤를 정진화가 4위로 이었다. 같이 포디움에 오르자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메달을 축하하는 선배와 그런 형을 “정신적 지주”라 부르는 동생으로 진한 ‘브로맨스’를 보여줬다.
 
이번 대회도 마찬가지였다. 정진화는 개인 입상은 불발됐으나 또 한 번 ‘아름다운 4위’로 단체전 금메달에 기여했다. 그는 “맏형으로서 더 잘했다면 애들이 더 잘 따라왔을 텐데 많이 부족했다. 그런데도 저와 코치진을 믿고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은 채 잘 따라와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왼쪽부터 정진화, 이지훈, 전웅태가 시상식에서 2위 중국, 3위 일본 선수단과 기념촬영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담아뒀던 ‘은퇴’ 이야기도 꺼냈다. 그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에서 나가려고 생각했다. 아무리 잘해도 모든 경기가 후회가 남지만, 특히 후회 남지 않는 경기를 하고 싶어 최선을 다했다”며 “정진화의 근대5종 대표팀 인생의 마지막을 금메달로 장식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잊지 않은 당부가 하나 있다. 주목 받지 못하는 제4의 멤버 막내 서창완(26·전남도청)에 대한 것이다. 형들과 함께 끈질긴 레이스를 펼쳤지만 아쉬운 8위로 대회를 마쳤다. 상위 3인의 성적으로 겨루는 단체전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정진화는 “다른 것보다 함께하지 못한 막내가 주장으로서 너무 마음 아프고 힘들다. 비록 세 명이 (시상대에) 올라가지만 함께 피땀흘려 운동한 시간들이 메달 보다 값지다는 걸 모두가 안다. 충분히 위로 받고 축하 받고 격려 받았으면 좋겠다”며 마지막까지 맏형의 소임을 다하고 대회를 떠났다.
 
스포츠월드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